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문단 편집) === 미국으로 [[망명]]하다 === 1930년대가 되자 독일은 [[아돌프 히틀러]]가 집권하면서 [[유대인]] 탄압이 시작되었다. 상대성 이론을 비롯한 그의 연구, 책들도 유대인의 연구라는 이유로 공개적으로 불태워지고 독일에 남아 있던 재산도 모두 뺏기는 수모를 당했다. 여기에 필립 레나르트, 요하네스 슈타르크 등을[* 이들 두 사람은 각각 1905년과 1919년에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필두로 한 저명 과학자들마저 '독일 물리학'이라는 명목 아래 아인슈타인 등 유대인 과학자들의 연구 업적을 부정, 배척하는 주장을 공공연히 내세웠다. 유대인이었던 아인슈타인도 나치 독일 정권으로부터 시민권을 박탈당하고, 당시로서는 엄청난 거액이었던 5만 마르크의 현상금까지 걸리게 되면서 신변에 위협을 받게 된다. 결국 아인슈타인은 1933년에 유대인을 탄압하는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나치 독일 정권]]을 피해 [[미국]]으로 피신하여 망명길에 오르게 된다.[* 아인슈타인이 부인 엘사와 함께 [[패서디나]]의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를 방문중이던 이 해 2월과 3월 [[게슈타포]]가 [[베를린]]의 집을 습격했다가 두 번 다 허탕을 치고 돌아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아인슈타인은 [[3월 28일]] [[벨기에]] [[앤트워프]]로 와 독일 영사관에서 시민권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 잠시 머무르는 동안에도 여기는 무서워서 한시도 더 못 있겠다고 엘사가 보챘다고 하며(벨기에는 독일 접경국이다.) 대서양을 건널 배를 타러 가는 길은 벨기에 왕실에서 경호해 주었다.]이후 독일에 있던 재산은 나치에 의해 전부 몰수되었는데 배는 팔아치우고 집은 [[히틀러 유겐트]] 숙소로 만들었다. 당시 이렇게 미국으로 도망친 유태인들은 꽤나 많았는데 [[볼펜]]을 발명한 헝가리 국적의 유대인이었던 비로 라슬로 역시 비슷한 시기에 [[아르헨티나]]로 망명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22&aid=0002939035|그리고, 아인슈타인을 비롯해 프로이트 등 몇몇 유명인사들 역시 나치를 피해 망명했다.]] 아인슈타인은 미국으로 망명한 후 미국 국적을 취득하였고,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물리학 강의를 하였다.[* 프린스턴의 정식교수는 아니었다. 공식적으로는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의 일원 자격으로 물리학 강의를 계속하며, 프린스턴 물리학 교수진들과 협력했던 것. [[https://dpul.princeton.edu/einstein-and-princeton/feature/princeton-university|#]]] 나치를 피해 망명하면서 "권위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이 진실의 가장 큰 적이다." 라는 말을 남겼다. 1939년에는 나치가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이후, 나치가 자신의 상대성 이론을 이용해 원자폭탄을 만들려고 하는 소문을 듣고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미국도 이에 대응해 원자폭탄을 만들기를 촉구하는 편지를 보냈고 결국 미국은 원자폭탄 개발을 세계 최초로 성공하게 된다. 그러나 1945년에 일본과 전쟁 중이던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히로시마 원자폭탄|원폭을 떨어뜨려]]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은 아인슈타인은 자신 때문에 이런 무서운 일이 벌어졌기 때문에 크게 경악할 수 밖에 없었고, 그 이후 핵무기 반대 운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유대인 건국 운동인 [[시오니즘]]에 대해 처음에는 부친의 영향으로 부정적이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차 지지하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다만 열성 지지자는 아니고 '이름만 빌려준' 정도에 그쳤다. [[이스라엘]]이 건국된 후인 1952년에 대통령직(내각제 정부에서의 상징적인 지위)을 제의받기도 했지만, 이미 고령이어서 사양했다. 이렇게 미국으로 망명한 덕분에 아인슈타인은 나치의 박해로부터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